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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공부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을 되풀이하려고? 경찰의 농민 과잉진압이 다시 한번 2024년 남태령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 남태령과잉진압

by D@$$🤔 2024.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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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1일 광화문 집회를 하러 올라오던 트랙터가 남태령에서 경찰들에 의해 막혀 올라오지 못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뉴스에서 제대로 다루지않아 우연찮게 전해듣고, 또 뉴스를 보고, 실시간 유튜브를 보고 밤 11시가 넘는 시간에도 그대로 대치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이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박근혜 정권때의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이 떠올랐어요. 지금은 많은 사람에게 잊혀졌지만 그 사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이야기해보고 이번 농민 과잉진압 및 탄압이 왜 논란이 되는지 알아보려고 해요

백남기 농민 장례 미사 행진 출처 사진의 신소영 기자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이란?

전남 보성의 백남기 농민이 2015년 11월 14일 서울 민중 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쏜 살수차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317일간 혼수상태로 치료를 받다 사망한 사건입니다. 당시 전면에서 캡사이신+물대포를 맞은 백남기 농민의 연세가무려 67세셨습니다.  병원에 이송 될 당시의 상태가 안와골절 및 뇌,안면 등의 골절이었는데요. 이때도 박근혜 정권의 새누리당, 지금의 국민의 힘이죠, 의원들은 경찰의 물대포가 아닌 외부 타격에 의한 골절이라고 부검해야한다 우겨대기도 했어요. 여담이지만, 이때는 국민에게 죄송하다 무릎꿇고 드라마 아내의 유혹마냥 점찍고 이름바꿔 돌아오더니, 지금은 검찰출신 윤석열이 가지고 있는 본인들의 비리가 무서워 국민을 외면하고 있는 꼴을 보이고 있네요.

 

백남기 농민이 민중 총궐기 집회에 참여한 이유? 오르지않는 쌀값, 공약 미이행 등

많은 분들이 백남기 농민이 민중 총궐기 집회에 참여한 이유는 단순히 쌀 값을 올리지 않아서, 라고 생각하시는데요. 민중 총궐기 집회에는 농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있는 많은 국민과 단체가 참가하는 시위입니다. 이 당시 농민 뿐만 아니라 세월호 의혹을 품은 국민들, 노동자들, 국정교과서 반대 국민들 많은 국민들이 모여있었습니다. 백남기 농민은 그 중 우리나라 쌀값이 너무 낮아졌고, 수입 쌀로 인한 농민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참가하셨어요. 박근혜의 대선 공약 중에 하나였던 쌀값 인상이 되려 당선 후 수입 쌀 증가로 이어지면서 무시당한 농민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죠. 그들이 참가한것은 대규모 농민시위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참여한 민중 총궐기 집회였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선두에 선 이유? 운동권 출신으로 민주화에 앞장서던 민주열사

백남기 농민은 중앙대 재학시절 학생 운동권 출신으로 박정희 정부 탄압 및 투옥까지 당했던 민주 열사입니다. 투옥 이후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풀려났었는데요, 이후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백남기 농민이 농민들을 대표하여 농민협회를 꾸리고 농민들을 위해 앞장서서 정부와 맞서던 인물입니다. 

 

민중 총궐기 물대포는 경찰의 과잉진압이 불러온 과격시위로 변모한 탓

애초에 과격시위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냐, 라는 원초적인 물음을 가지신 분들이 많으세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대한민국에서의 시위는 광화문에서, 혜화에서, 종로 각지 등에서 조용하게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정치권에 압박을 가하던 평화시위였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때 살수차가 등장했고, 박근혜 정권때는 시위를 하러 모인 국민들을 경찰차가 벽을 세우고 막거나 행진을 못하게 하는 등의 과잉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국민들이 맞서 경찰차를 움직이고 행진하려고 무리하게 움직이다 과격시위로 변질되었고, 경찰은 단순히 앞을 막아서는 것뿐만 아니라 공권력과 할 수 있는 모든 폭력 행태를 보여주며 시민들을 탄압하였어요. 이명박 시위때는 13살의 초등학생도 잡아갔으니 박근혜때 경찰이 국민들을 향해 더 큰 폭력을 보인게 놀랍지많은 않습니다. 거기에 독재자의 딸이니 얼마나 국민들이 우습게 보였을까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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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남태령에서 다시 시작된 경찰의 농민 탄압

윤석열의 탄핵안 가결시위 이후, 전국 각지에서 헌재에 압박을 주려 모이고 있고 농민들 또한 힘을 모으기 위해 일주일을 꼬박 반도를 가로질러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올라오는 길이 춥고 외롭지만 그래도 안전하게 잘 올라오던 트랙터 17대가 서울로 들어서자마자 남태령 고개길에서 막히게 되었습니다. 현재 서울 시장은 오세훈이고, 탄핵 부결을 지지하던 국민의 힘 출신이니 놀랍지만도 않은데요. 안전을 위해서라며 경찰을 2,000여명을 투입했다고 하네요. 이에 시민들이 소식을 듣고 남태령으로 달려가 농민들과 밤새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남태령사건이 과격시위가 아닌 탄압인 이유는?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 행진에 경찰이 과잉 진압으로 트랙터를 넘어트리고, 창문을 깨고 도로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로 한 차선만을 이용하여 이동하는 트랙터를 경찰차가 벽을 세우고 (명박 산성이 떠오르네요!) 막고 있을 이유는 없을텐데 말이죠. 그들이 막지 않았으면 진작 광화문에서의 시위를 마치고 다시 돌아가는 길이셨을 겁니다. 고작 17개의 트랙터가 서울로 들어가는 걸 막겠다가 차량 수십대가 양 방향 도로를 막고 있고, 경찰은 되려 버스들과 시민들의 차를 막아서며 트랙터가 시위를 하고 있으니 출입금지라는 허위사실을 퍼트리고 있어요. 21일 토요일만해도 막힌 남태령 도로에는 농민들과 트랜터, 화물차 합쳐서 5-60대 뿐이었다고 합니다. 길을 터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농민 탄압입니다. 경찰들은 농민들을 압박하면 그들이 과격하게 (농기구의 이미지가 어떠신가요? 농민들 또한 대한민국 역사에서는 과격하고 다혈질로 나타납니다. 그들은 또 고령이고, 평화시위라는 개념보다는 탄압에 익숙하신 분들이구요) 대응할 것을 예상하며 오히려 일이 커지기 만을 바라는 것처럼 먼저 과한 대응을 하고 있네요. 그런데 이 경찰들이 계속 쏟아져나오는데 이건 누가 지시한 것 일까요? 서울 진입을 막는걸 경기도에서 막을리는 없고.. 서울시에서 하고 있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농민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수천명의 시민들이 영하의 날씨에 밤새 같이 모여 경찰과 대치중

남태령길은 24시간이 지난 아직도 막혀있다고 해요. 다만, 농민들의 길이 막힌것을 전해듣게 된 이번 탄핵시위에 주축이 되었던 2030여자 시민들과 민주화 운동에 앞섰던 5060세대가 소식을 듣고 막차를 타고 남태령에 도착하여 영하 6,7도의 날씨에 농민들과 밤새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자리를 뜨면 경찰들의 탄압이 시작될까 서로 연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농민들의 쌀을 먹고 자란 국민들, 경찰에게는 이제 쌀 밥 주지 말아야 한다는 우스갯 소리

이번 탄압에서 자리를 지키는 국민들 중 발언을 하기 위해 올라온 여학생의 감동적인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데요.  농민들의 쌀을 먹고 자란 국민이라, 우리 모두 농민들의 피땀으로 자랐으니 함께 하려고 달려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국민들이 그 이야기에 감명받고, 경찰들에게는 이제 쌀밥을 주지 말아야한다는 우스갯 소리도 나오고 있어요. 물론 모든 경찰이 그런것은 아니구요, 경찰이 뭐라고 갑자기 권력을 잡은 것처럼 갑자기 불시 검문하고 (이건 실제입니다. 유튜브에도 갑자기 불시검문하는 영상들이 있어요), 이유도 없이 팔짱끼고 연행하고, 잡아가고, 밀치고, 트랙터를 부수고, 넘어뜨리고.. 단순히 서있지 않고 폭력사태를 만드려는 경찰들은 평생 농민들이 기른 농산물을 한 톨도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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